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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서 물이 내려요.

20240621 금

천장에서 물이 내려요.

남편과 도서관에서 책보다 9시가 넘어
귀가했다. 시헌이가 오기전에 와야해서 먼저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집이라 어두운 상태였다.
불도 켜지 않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조명빛으로 거실과 부엌을 오가는데 발에 물끼가 느껴진다.
뭐지? 누가 물을 흘렸나? 별생각없이 닦아내고
난 거실 책상에 앉아 시헌이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
‘토도독 토도독’ 소리가 난다.
천장을 보니 벽지가 한참을 내려앉아있었고
그안에 물이 드렁드렁 차 있는게 아닌가...
마침 집에 돌아온 시헌이도 이게 뭔일인가 싶어 몇가지 질문을 던진 후, 샤워하러 화장실로 들어간다.
서둘러 양동이로 받치고, 금방이라도 벽지가 터지면 집안이 물난리날 것 같아 급히 남편을 소환한다.

윗층은 부재 중이다.
남편과 나는 벽지를 조금 찢어낸후 물을 받아낸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듯 흘러내린다. 빌라가 노후되니 이런 하자보수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참 별걸 다 겪는구나 하며 밤새 양동이를 받쳤놓고 아침을 맞이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한번 들르겠다는 3층분은 오시지도 않고, 일하는 사람 보내준다며 말이없다.
늦은 저녁, 이번엔 거실 중앙 조명등 근처 벽지들이 들고 일어났다. 또 한곳을 찢어 물을 받아내고 양동이를 받쳤놓고 두어시간 지나니 진정이 되었다.
3층분이 내일 3~4시 쯤에 사람을 보내준다고 한다.
계속 한방울씩 떨어지는 물 때문에 여기저기 걸레와 양동이로 그들을 받아내고 있었다.

11시가 넘어 방에서 책을 보는데 또 토도독 한다.
조명등안으로 물이 고이고 있었다.
누전이 될까 무서워 전원을 끄고 조명 분리를 해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아 전원스위치에 사용금지표를 붙이고 물 떨어지는 곳에 양동이 받쳐놓고 잠을 청한다. 불안하기도 하지만 곧 잊는다.

이 모든일에 살짝 화가 올라오기도 했는데
모든 것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물이 흐르면 닦고 받쳐두고
닦고 받쳐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집중해서 하자.
그러니 덤덤하게 지낼 수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또 조명등 아래로 후두둑...
그냥 바닥 닦아내고 양동이 받쳐둔다.
그러고 보니 삼일째다.  
오늘 일하는 분 오신다고 했으니 기다려보자.

그러고보니
마음 다스리는 지혜가
아주 대단해졌다.
많이 성숙해졌다.
나의 성숙도를 테스트하려고
이번 일을 겪게 하나보다.
테스트 잘 통과한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