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4.월
둥둥 떠다니는 잡념들.
지난 주말은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도 목 뒤덜미가 뜨겁게 달아오르곤 한다.
아빠의 응급실행으로 나도 부리나케 병원으로 향했고, 바로 응급실 보호자로 앉아있었다.
앉아 아빠랑 대화도 나누고 잠든 아빠곁에서 책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의사와 환자의 대화가 귀에 와 꽂혔다.
여자분이었는데 뇌출혈로 인해 바로 입원을 해야한다고 했다. 그분은 자신의 언어구사력에 문제가 있다고 의사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간호사가 와서 보호자가 있어야한다고 하니 없다고 아무도 없다고 계속 대답을 회피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참 외롭게 사시는 분이네. 가족이 아무도 없다니 무슨 사연일까? 궁금해하고 있었다.
간호사는 휴대폰을 확인하여 언니라는 한분을 찾아 사정을 이야기하고 병원내방을 권했다.
그 사이 그 여자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연히 60대 이상된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40대 후반 정도 돼 보였다. 젊은 분이 얼마나 놀라고 상심이 클까?
잠시 뒤 언니라는 분이 왔다. 친언니라고 하는것 같았다. 언니분과 대화하는데 이 병명으로 인해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그것을 염려하는 마음에 본인의 정보제공을 꺼리고 있었던것 같았다. 그래서 가족이 없다고 계속 되풀이 했던 것 같다.
언니분은 회사 상사에게도 차분히 설명하며 추후 불이익이 없도록 조치해달라부탁했다.
그 대화 속에서 남편은 없고, 딸아이가 한명있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었다.
잠시 뒤 입원실로 이동했는지 그녀의 침대가 비워져 있었다.
조기 발견이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타인이지만 금방 좋아지시길 간절히 바라본다.
젊고 선하게 생겼던 그분의 얼굴에서 웃음이 피어오르길 기대해본다.
이 과정을 보고 있으면서 나도 은근 신경쓰였다보다.
목 뒤덜미가 뜨거워져 지금까지 후끈하다.
예전엔 나이드신 분들에게 오는 병이었지만
요즘은 젊은 분들에게도 발병하니 남의 일 같지 않아
나도모르게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같다.
엄마의 애간장을 태운 아빠는 특별한 문제없다는 소견을 듣고 바로 퇴원했다. 외래진료를 예약하고 나는 급히 돌아섰다. 3시가 넘도록 난 공복상태였다.
그리고 엄마곁엔 오빠 내외가 있었기에 쓸쓸히 돌아나왔다. 난 그녀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저 멀리 사는 아들들 대신해 일처리 해주는 사람?
그런 생각은 늘 있지만 오늘따라 머리가 무겁다.
응급실 그 환자가 완쾌되는 상상을 하면 이 무게가 덜어질려나?
일요일엔 아들 친구 둘과 계양산에 다녀왔다.
셋을 데리고 가니 한명이 뒤처지거나 싸우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나는 중재자 역할을 잘 못하겠다.
내 아이 빼고 둘이 종종 그러니 누구 편도 되어줄 수 없었다. 잘잘못을 가리기도 내가 상황을 모르니 편애가 되어버릴까 그 순간만을 모면하곤 했는데 그 모든 일들이 내게는 부담스러웠다. 엄마들의 대응도 걱정되고, 속상해서 들어간 친구의 엄마도 속상해하는건 아닌지, 직접 전화해서 물어볼까 하다가도 마음을 접는다.
이럴땐 갈등상황을 만들지 않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아들은 꼭 셋이가고 싶다고 한다.
재미나게 잘 놀다가도 어느새 불꽃전쟁을 벌이는 아들 친구들.(시헌이는 매번 싸움에는 관여하지 않고 방관하고 있다) 그냥 바라보기만 할 수 없을 정도로 주먹과 발길이 매섭게 오간다.
한번의 기회를 더 주고 만약 계속 그렇다면
나도 방법을 바꿔봐야 할 것같다. 속상했을 친구와
그 아이의 엄마마음까지 읽어야하니 이래저래
마음이 쓰였던 지난 일요일이었다.
갑자기 다녀와야할 병원행, 내 통제밖의 아이들로 인한 갈등으로 나의 주말은 위태위태 지나갔다.
내가 해야할 일을 놓치지 않게 최소한의 힘은 남겨둔다. 그외 시간은 잡념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책을 읽거나 마음다짐을 하거나 좋은 상상을 하거나 이것저것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 허리를 곧추 세워 앉아있다.
나는 한 고비를 넘기고 있다.
아직도 태연하지 못했다.
그저 그런 상황들에서 피해 있었을 뿐이었나?
다시 맞닥들이니 난 또 휘청거리고 있나?
그 휘청거리는 시간을 줄이기만 해도
조금씩 성장한것이라 위로해야지.
오늘 지금까지다. 이 시간부로 끝이다.
그래야 내가 멋있다. 여기서 끝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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