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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의 운전연수

푸른하늘74 2024. 7. 2. 00:06

20240701 월

10년만에 운전연수

10년전 셋째를 가졌을 때에도 나는 운전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직장다닐때 동료에 이끌려 취득한 운전면허증이 10년동안 장농에 묵혀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겁이 많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궂이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었다.
결혼을 하고나서도 우리부부는 차없이 둘째가 4살때까지 불편하고도 힘겹게 외출을 시도했었다. 아이들과의 여행은 아예 접어둔채 지냈던 것 같다.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잠든 두 딸을 깨우지 못해 종점까지 갔다 되돌아오기도 하고, 잠든 아이들 한명씩 들쳐업고 가다 갑자기 비를 만나게 된 그날은하늘을  괜히 야속해하기도 했었다.

남편의 직장이 충청도 아산으로 이전을 하면서 우리에게도 차를 구입해야할 이유가 생겼다. 지방 도시라 대중교통이용이 수월하지 않았기에, 어디를 가든 이동수단이 필수였다.
드디어 우리의 발걸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들과의 외출이 즐거웠다.
그래도 나는 운전할 생각이 없었다. 남편이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셋째를 임신하면서 이젠 더이상 운전을 미뤄둘수 없다고 판단이 되었다. 남편이 없을때도 나의 기동력이 살아있어야 세 아이를 케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만 바라보고 있다간 내가 너무 무책임한
엄마가 될 것 같았다.
바로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남편이 연수를 자청했다.
대개, 남편에게 운전연수 받으면  부부싸움으로 이어지니 되도록이면 부부끼리의 연수는 하지 말라는 것이 주위 조언이었다.

남편을 달랐다.
임신한 아내의 운전연수를 겁도 없이 시작하였다.
그때 다행히 우린 아산의 한적한 곳에 살았기에 아팥트 단지 주차장과 도로도 한적한 편이었다.
주차장에서 엑셀과 브레이크 사용법, 좌우회전 시 유의사항 등 기본 소양을  익히고 아파트 단지를 느림보 거북이처럼 달려보았다. 덜덜 떨며  브레이크와 엑셀의 위치가 햇갈려 급발진과 급브레이크를 밟고 깜짝 놀래기가 몇번이다. 그렇게  조금씩 익혀나갔다. 남편은 그럴때 마다 나를 안정시키며 괜찮다고 얘기할 뿐 화한번 내는 법이 없었다.
불안했을텐데 아무 내색없이 나의 운전지도에만 온 마음으로 집중했었다.

그렇게 두어번 아파트 단지를 주행해보고 도로로 나갔다. 도로주행 연수 역시 두근거리는 나와 달리 남편은 본인도 긴장되었을텐데 나의 운전에만 오롯이 집중하며 지도해주고 있었다. 천천히 가도 괜찮으니 안전하게 운전하라며 잘 하고 있다고 나를 다독여줄 뿐이었다.
이렇게 도로주행연수도 안전하게 마친 후.  나는 조심스레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남편없이 세 아이를 태우고 이동할 때 그 긴장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딸들에게 엄마가 첫 장거리 이동이니 말은 되도록이면 시키지 말고, 갓난 아기인 막내가 울면 잘 달래주길 부탁한다고 미주알고주알 설명하기도 했었다. 그 후, 남편이 없는 날엔  혼자 세아이를 데리고 수없이  거리를 오갔었다. 때론 피곤한 남편을 대신해 핸들을 잡기도  한다. 그러면 그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잔득 긴장된 모습으로  시작한 운전이 이제 10년째다.
세 아이가 초중고 학생이라 예전만큼 같이 이동하는 경우가 많이 줄고 있지만 내가 그들의 안전한 이동수단의 주체가 되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렇게 길을 만들어준 남편에게도 참 감사하다.

용기내어 운전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지도해주었던
그 젊은날의 남편은 여전히 나를 도전하는 삶으로 이끌어 주고 있다.
모든 도전이 그와 함께라면 즐겁다.
더디고 힘겨워도 나는 유쾌하게 나아갈 것이다.
그와 나의 믿음이 그렇다.